Field Note

어제 한라산에 이은 일정이라서 ... 난 정말 죽을 맛이었다. 특히 어제 산행에서 하산길 시작부터 무릎이 아팠는데, 내려온 길도 하필 험하다는 관음사 코스였으니 ... 그 후유증이 생각보다 길었다.
심지어 당일 숙소에서는 계단을 제대로 못 걸어내려갔을 정도니까...

그리고 ... 이 날 일정은 거문오름 탐방 예약을 늦게 한 죄로 ... 꽤 꼬여있었다. 원래 9시에 탐방 예약하고 여유있게 돌아볼 생각이었는데, 11시 반으로 예약이 되는 바람에 일정도 꼬여서 머리 속도 좀 복잡하게 출발하였다.


1. 함덕해수욕장
함덕해수욕장함덕해수욕장

함덕해수욕장은 원래 계획에는 없었다. 그냥 제주에서 만장굴 가는 길에 표지판도 보이고, 1박2일에서 김C가 야간 고행(!)을 했던 그 날, 촬영 시작을 여기서 했고... 뭐 그런 기억들을 가지고 그냥 찾아가봤다.

전에 삼양해수욕장 갔을 때, 입구도 제대로 찾기 힘들고 그래서 긴장했는데... 여긴 시설도 잘 갖추고 주변도 깔끔해서 이용하기에 좋다.
삼양과 달리 함덕은 흰 모래 해안. 해안에 현무암이 있지만 모래는 현무암 기원이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함덕해수욕장함덕에서 본 한라산

이 날 날씨가 매우 좋았는데, 한라산 정상이 바로 보일 정도였다. 어쩐지 웬수 같은 한라산을 보는 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을 정도.
그런데 ... 잠깐 구경하고 간다는 게 한라산을 보니까 맛이 가서 ... 많이 늦어졌다 ㅠㅠ


2. 만장굴
그래서 급하게 간 곳은 일단 만장굴. 경로를 놓고 봤을 때 거문오름을 가기 전에 만장굴을 다 보는 것이 왔다갔다 하지 않고 일정하게 경로를 유지할 수 있어서, 시간은 급하나 일단 만장굴을 보기로 했다.

만장굴 가는 길

가는 길에는 이런 상록활엽수들도 볼 수 있다. 이런 나무들의 잎은 두꺼운 편. 겨울 추위와 가뭄을 이기기 위한 나름의 생존전략이다.

만장굴 바닥만장굴 벽면

만장굴의 바닥과 벽면, 천장 모두 매우 거칠다. 용암동굴은 흐르던 용암의 겉이 식고, 안은 식지 않고 흘러서 생기는 공간이기 때문에, 내부에서는 표면이 거친 것. 특히 바닥이 많이 거칠어서 걷는 데 어려움이 많다.

용암석순


사진은 용암석순으로, 용암의 일부가 위에서 떨어져 굳어서 만들어진다. 다 떨어지지 않고 위에 매달려 있으면 용암종유가 된다.
그 밖에 용암석주도 볼 수 있다. 용암석주는 용암이 바닥으로 그냥 흘러버려서 생기는 것이다.

만장굴은 전체 7.3km 구간 중 1km 구간이 공개되어 있다. 그 1km 구간(그러니까 왕복 2km)을 나는 사진 다 찍으면서 40분만에 봤다.... 왜? 거문오름 올라가려면 빠듯해서 ㅠㅠㅠㅠ 사진 찍을 때 빼고는 정말 잰걸음으로 빨리빨리 다녔다.


3. 거문오름
제주도에 와서 처음으로 올라가는 오름이다. 세계자연유산에 '거문오름과 용암동굴'이라는 타이틀로 등록되어 있고, 성산일출봉과 함께 오름으로는 유일하게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거문오름과 용암동굴'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유는, 거문오름에서 나온 용암들이 만장굴, 김녕굴, 당처물동굴 등 여러 동굴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거문오름 측면거문오름 안의 모습

거문오름은 말발굽 모양으로 생긴 오름이다. 전형적인 오름의 모양은 아닌데, 그 한 쪽으로 열린 부분이 여러 동굴을 만든 그 용암이 흘러간 흔적이다.

거문오름의 풍혈 중 하나거문오름 탐방로

거문오름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이후에, 탐방로를 만들고 탐방안내사를 두어 지정된 시간에만 탐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9시부터 11시 30분 입장까지 가능하다. 그러니까 내가 들어간 11시 30분은 마지막 타임. 여기에 늦지 않기 위해서 카린은 그렇게 만장굴부터 밟았나보다 -ㅁ- ㅋㅋㅋ (이런 말 하면 그렇지만... 사실 과속 많이 했다 ...)
그런데 탐방로는 아직 다 만든 게 아니어서, 군데군데 등산화 없이는 어려운 구간들이 많이 있다. 탐방로가 완비되면 운동화로도 편히 다닐 수 있을 것이다. 단, 탐방로까지 가는 길에 진흙은 어쩔 수가 없다. ㅠㅠ (새 등산화인데 진흙 완전 많이 밟았어 ㅠㅠ)

돌무더기거문오름에서 자라는 나무의 뿌리

왼쪽 사진은 거문오름 안에서 경작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제주도는 돌이 아주아주 많은데, 경작을 위해서는 이 돌을 치워야 한다. 그렇게 치운 돌을 모아둔 게 저런 모양.
거문오름 안에서는 경작도 일어났고,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한 증거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오른쪽 사진은 나무 뿌리가 지표에서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모습으로, 거문오름의 토양층이 얇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화산쇄설물 덩어리거문오름 전망대에서

거문오름에서는 물론 이런 화산쇄설물 덩어리도 볼 수 있다. 화산탄이었던가 지금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파호이호이 용암의 일부도 볼 수 있다. 의외로 탐방안내사들이 교육을 잘 받아서, 설명해야 하는 부분에서 파호이호이 용암과 아아 용암 정도는 구분하여, 특징도 설명해준다.

거문오름 능선을 도는 것은 탐방안내사가 대동하지 않지만, 안전요원은 따라붙는다. 그리고 일방통행. 다 도는데는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한다. 난 다소 빨리 걸어서 앞 타임 사람들하고 같이 갈 정도였는데... 사실 난 죽을 맛이었다. 무릎 아파서... ㅠㅠ 거문오름에는 9개 봉우리가 있는데, 첫번째 봉우리 도착하자마자 "내가 왜 올라왔나" 라면서 후회했다... ㅠㅠ

아무튼 내려와서 바로 식당에서 밥 한 끼 하려는데, 평범하게 백반으로 먹으려고 했더니 없대서 ... ㅠㅠ 그냥 김치찌개를 먹을 수 밖에 없었다. 혼자 다니면서 제일 난감한 건 ... 갈치, 고등어조림은 꼭 2인분 이상 판다는 것... -_- 나 고등어 먹을 줄 아는데 ...


4. 산굼부리

산굼부리는 넓은 분화구에 비해 그 높이가 낮아 매우 특이한 분화구이다. 분화구의 모양으로, 응회환(tuff ring)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이는 분화구의 높이가 지름의 1/10~1/30 정도인 경우에 해당한다.

산굼부리는 마르(maar)라고 알려져 왔다. 마르는 마그마가 지하에서 지하수를 만나거나 얕은 바다와 만나는 경우, 수증기압이 높아져서 강한 폭발을 일으킬 때 나타나는 분화 양식이다. 이 경우 대부분 수증기라서 폭발 후 증발해버리지만, 강한 폭발 때문에 주변 암석이 파쇄되어 주변에 널부러지는 -_-; 형태가 된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러한 증거들이 빈약하다는 점을 들어, 마르가 아닌 함몰화구(pit crater)라고 보기도 한다. 함몰화구는 용암이 조금 흘러나오거나 나오려다 말아서 분화구가 대충 만들어지다 말았을 때 생긴다.


5. 돌문화공원
이 날의 마지막 코스는 제주 돌문화공원이다. 이름 그대로 돌과 그와 관련된 문화를 다룬 공원이다.
크게 세 코스로 나누고 있고, 다 둘러보는 데는 각 50분씩해서, 2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한다...만, 내가 여기 도착한 시각이 16:30이었으므로 ... 일부는 패스.

돌문화공원에서 큰 건물은 돌박물관 하나이다. 나머지는 작은 초가집 정도. 특이한 모양의 현무암들이 전시되어 있고, 돌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 대륙이동설, 판구조론 같은 것들도 언급된다. 현무암 시추 샘플도 볼 수 있고, 각종 화산 양식도 설명하고 있다. 지리학(지형학), 지질학 전공에게는 꿈과 같은 곳일 듯 ㅋㅋ


밖으로 나오면, 작품들도 있고, 옛날에 사용했을 돌로 만든 물건들이 쭉 전시되어 있다. 2코스로 진입하면 시대별로 주민들이 사용한 돌과 관련된 물품들을 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시간이 촉박해서 제대로 못 봤지만, 꼼꼼히 보면 현무암과 제주도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다만 박물관들이 그렇듯이 그 곳의 배경에서 분리된 느낌이지만.
아무튼 자연과 인간 생활을 같이 보는 지리학을 공부한 입장에서는 상당히 좋은 곳임에는 분명한 느낌.


여기에서 일몰을 봤기 때문에 바로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는 유명한 (..) 소낭 게스트하우스인데 ... 난 여기 바베큐 파티 할 줄 알았는데, 사람이 적다고 안 한대... ㅠㅠ 대신에 그 다음날 오름투어는 그대로 강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