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Note

14일은 성년의 날이라, 신짱도 쉬는 날이라 학교를 안 가서 코베도 같이 가고 그랬다지만, 15일은 어엿한 평일이라 이 날 만큼은 혼자 다닐 수 밖에 없었다. 뭐 그런 점은 애초에 계획되었던 것이기에, 혼자 갈 곳으로 골라둔 건 나라(奈良).

나라현의 메인이기도 한 나라시는 일본의 고대, 나라시대에 수도가 있던 곳이다. 그 때부터 이어온 아주 전통적이고 유서깊은 곳으로, 연대가 상당한 유적들이 널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0. 나라로 가기


칸사이 스루패스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나라로 가는 쉬운 방법은, 남바에 있는 수많은 역들 중에서 킨테츠남바역에서 킨테츠나라선을 타고 킨테츠나라역까지 가는 방법이다. 단, 나라 버스에서는 칸사이 스루패스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패스가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패스 사용에 있어서는 고민을 좀 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나 나라코엔만 갔다오는 경우라면.


JR을 이용하는 건, 킨테츠나라선을 이용하는 쪽보다 모든 면에서 불리하다. 요금면에서는 메리트가 없고 칸사이 스루패스를 이용할 수도 없고(대신 JR웨스트패스), 무엇보다도 나라코엔을 가려면 JR나라역은 킨테츠나라역보다 한참 더 걸어야 한다. 참고로 킨테츠나라역에서도 토다이지까지 거리는 꽤 걸린다.


그런 이유로 내가 이용한 것은 킨테츠나라선. 킨테츠남바역에서 쾌속이나 급행을 타면 금방 간다고 하는데, 어찌 딱 맞게 쾌속이 와서 잘 갈 수 있다. 오사카우에혼마치역까지는 지하, 그 다음부터는 지상으로 다닌다. 난 (내가 탄)열차가 역을 무정차 통과하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왜 이렇게 좋을까... ㅋㅋㅋ

오사카와 나라 사이는 이코마산이라는 꽤 큰 산이 자리하고 있다. 참고로 나라시는 분지에 있다. 이코마산을 터널로 지나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산에 가까이 근접해야 터널도 만날 수 있는 거니까, 멀리서 아득하게만 보이던 오사카의 끝으로 다가가는 기분이다. 오사카 자체가 꽤 넓으니까 이렇게 산에 가까워지는 것도 조금은 신기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거꾸로 딱 보면, 오사카 시내까지 딱!! 한 눈에 보인다. 좋아, 여긴 일단 찜. (나중에 보면 앎.)


킨테츠나라역에 도착하면, 풍경이 이렇다. 여기가 시내 중심지인데도 불구하고 오사카에 비하면 정말 동네 번화가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칸사이의 도시구조 상에서, 나라의 위치는 뭐 그런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킨테츠나라역에서 나오면 나라시 인포메이션센터가 있어서 '할머니/할아버지에게' 관광안내는 받을 수 있다. 여행책자에서 버스 패스는 끊어두면 편하다고 해서 버스 패스 사려고 했더니, 나라코엔은 걸어다니고 서쪽으로 갈 때만 따로 타는 게 낫다고 해서 패스는 생략. 

그 과정에서 토다이지, 카스가타이샤를 비롯해서 몇 군데 가는 길과 소요시간 정도를 들었는데... 일본어 조금할 줄 안다고 했다가 패닉에 빠질 뻔했다. 어디 어디 가는 길 정도는 금방 알아들었는데, 어디서 무슨 버스를 탈 수 있다는 건 정말 알아듣기 힘들었다. 후... 일본어를 '춋또다케' 할 줄 모르는 나는 찌그러져 있어야지.. ㅋㅋㅋㅋㅋ 역시 벙어리 맞는 듯.


일단 밥부터 먹을 요량으로, 시장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12시 쯤인데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많았다는 것과, 일본은 아무튼 시장에는 다 지붕 씌워놨구나..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게 됐다. 아, 이 시장에 맥도날드와 미스터도넛이 있다는 건 조금 충격. 

아무튼 배가 무지 고픈 상태에서 걍 우동 먹으려다가, 우동이랑 밥이랑 있는 세트 메뉴를 권장하길래 좀 생각해보다가 그걸 시켰는데... 양 졸라 많아. 젠장.. 적당히 우동 2/3인분, 밥 조금 이렇게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동 1인분, 밥 1인분을 주었다. 난 그걸 다 먹을 수가 없었어.. ㅠㅠㅠㅠㅠㅠ



1. 고후쿠지


저 시장에서 굉장히 가까운 곳에 고후쿠지가 있다. 


고후쿠지 바로 인근에는 '사루사와노이케'라는 호수가 있다. 뭐 이건 그냥 동네 연못인 것 같은데.. 나라니까 뭔가 의미가 있을 것도 같다.


사루사와노이케에서 고후쿠지로 올라가는 길은, 이렇게 쭉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누가 봐도 일본탑 양식을 갖춘 3층탑이 있다. 작지만 위용을 갖추고 있는 모습이다. 저것도 아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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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에게 시내에 있는 절은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데, 그걸 감안해도 고후쿠지는 그리 크지 않은 편. 물론 나중엔 더 작은 절도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경건한 분위기이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들이 꽤 화려하다는 감상도 포함. 


고후쿠지의 본당 정도 되는 듯 하다. 이름은 도콘도(동금당). 안으로 자세히 보기는 어려운데, 역시나 이것도 국보다.


아무래도 고후쿠지는 이 건물이 메인인 듯 하다. 5층탑. 3층탑과 비교해봤을 때 양식은 비슷하지만, 이미 밑에서부터 규모가 훨씬 더 크다. 단순히 층만 높은 게 아니라. 


메인은 국보관에 있는데, 도콘도의 왼쪽에 있다. 입장료가 500엔인데, 칸사이 스루패스로 할인이 됐던가 기억이 애매하다. 국보관에서의 제일 볼거리는 역시 불상. 한국의 석굴암 정도는 가뿐히 제낄 것 같은 그런 사이즈의 불상도 있는가하면, 불상들의 다양한 표정을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 진짜 별에 별 표정을 다 갖다놓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런 걸 보다보면 고대 일본이 문화적으로 낙후되었다고 보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2. 나라코엔 진입


나라코엔(나라공원)은 토다이지, 카스가타이샤 등의 유적이 몰려있는 구역이다. 거주구역은 따로 없고, 기념품점이나 식당을 제외하면 민가 비슷한 건물도 없다. 그 밖에 나라국립박물관이나 나라코엔사무소 같은 것 정도를 빼고 나머지 공간은 거의 공터나 마찬가지. 그나마 저기는 나라코엔 입구라서 건물이 조금 있는 모양.


그 공터를 장악한 것은 다름아닌... 사슴!!!



특히 토다이지 앞은... 사슴 천국이다, 아주.. 사슴들이 좋아하는 '시카센베'[각주:1]를 파는 곳도 많고 주는 사람도 많기 때문인데... 이 사슴들은 따로 키우는게 아니라, 방목(?)하는 애들이라.. 나라코엔에서 뭘 파먹는 게 아니라면 거의 주식이 이 센베인 듯 하다. 그래서 그런가 토다이지 앞에 센베노점들 근처를 기웃거리다가 누군가 센베를 샀다! 싶으면 냅다 몰려든다.

왼쪽 사진 보면.. 무섭다. ㅋㅋㅋ 오죽하면 사슴을 주의하라고 표지판을 붙였을까(右).


그리고 시카센베를 샀을 때 팁 하나. 센베 다 줬으면, 손을 털고 들어서 더 이상 센베가 없음을 보여줘야한다. 안 그러면 계속 센베달라고 달려든다고. 물론.. 카스가타이샤에서 내려오다가 본 장면 중에... 어떤 아줌마가 센베 없다고 손 들고 뛰는데도 사슴이 쫓아달려가는 장면을 보기는 했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타까웠다. ㅋㅋㅋㅋㅋ


암튼 그런 장면 다 보고 나면 토다이지다.




3. 토다이지 (東大寺)


사슴사진 마저 방출하고. ㅋㅋㅋㅋㅋㅋ 토다이지 정문(그러니까 난다이몬/남대문)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토다이지의 본당인 대불전으로 가려면 이런저런 문을 지나야 한다. 오른쪽 사진은 문이 맞긴 했던가.. -_-;; 토다이지 전체는 무료이지만 대불전만은 유료다. 아마 오른쪽 사진은 그 매표소 및 출입구였던 걸로.


토다이지의 메인은 바로 이 대불전(다이부츠덴) 혹은 금당(곤도). 안에 엄청 큰 불상이 있어서 이름도 대불전인 것으로 추정된다. 역시 고대문화에서 위대함은 크기로 표현되어야 제 맛이지. 목조건축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고 여행 책자에 쓰여있다. 지금 이 건물은 에도시대에 재건되었다고 하고, 그 이전의 건물 모형은 내부에 전시되어 있다.


(좌) 대불전의 대불. 높이가 약 15m에 달하는 매우 큰 불상이다.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큰 불상인데, 실제로는 매우매우 어두운 관계로 촬영하기가 쉽지는 않다. 

(우) 저건 대체 무슨 불상인지 모르겠는데, 그냥 보기에도 엄청 늙어보인다. 저 사진은 몇 번 봤는데도 무섭다..


이것들은 다이부츠덴의 과거를 보여주는 모형들. 보다보면 조금씩 다른 점이 있는데... 뭐 그렇다. 아마 맨 우측은 현재 다이부츠덴의 모습과 같을 듯.


토다이지는 이것 이외에도 굉장히 넓은데, 토다이지가 하도 넓어서 마음 먹고 보면 하루 이상이라고 해서,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보고 지나갔다. 그래야 다음에 올 일이 또 있겠지...... (과연 내가 갈까?)



4. 토다이지-카스가타이샤까지


카스가타이샤 입구는 다 같은 줄 알고 그냥 막 갔는데, 알고 보니 나오는 길로 들어간 게 함정이라면 함정... ㅠㅠ


어쩌다보니 나라공원 실크로드 교류관을 지나서 와카쿠사야마(若草山)을 잠깐 스쳐서 보고 지나갔다는 건데... 

이런 식으로 갈거면 토다이지의 일부를 마저 보고 지나올 수도 있는 걸 뭐 이렇게 갔나 싶기도 하다. ㅋㅋㅋ 하여간 진짜 무식하게도 갔다.

역시 그냥 원래대로 갔어야 했어.


저 장면의 바로 뒤에는, 몇몇 기념품점 정도가 있을 뿐인데, 이 길 자체가 워낙에 한가해서 별로 볼 건 없었다.

정말 한적한 나라코엔을 걷는다, 라는 느낌 정도? 심지어 여긴 사슴도 잘 없다. 전부 토다이지 앞에 있는 듯.




5. 카스가타이샤(春日大社)


뭔가 생각을 잘못해서, 뒤로 들어간 게 엄청난 함정인데, 원래대로라면 나라국립박물관 쪽에서 '카스가타이샤 오모테산도'를 따라서 쭉 올라갔어야 했는데, 참 대단하게도 지도에서도 작게 표시된 길 따라서 잘도 찾아갔다. 진짜..

어쨌든 핵심은 '역방향'이라는 것.


카스가타이샤라는 이름에 '대사(大社)'가 있는 걸 봐서, 되게 큰 신사가 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보다는 여러 작은 신사의 집합인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이 작은 신사들이 여럿 있다. 



카스가타이샤 본전의 뒷편. 딱히 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던 것 같고, 밖에서 본 건 전형적인 규모가 큰 일본 신사의 모습.



이게 본전 쪽인 듯 한데, 사람들이 여기서 다들 기도하고 그러는 걸 봐서는 여기가 메인 공간인 듯 하다. 그런데 여지껏 봐왔던 다른 신사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 보통 뒤가 막혀있을텐데, 여긴 뻥 뚫려있고, 웬 썩은 나무 하나가 있는.. 그런 모습이다. 거꾸로 왔던 탓에 전혀 감을 못 잡아서, 제대로 보지 못한 감이 있는 건 여전히 아쉬운 부분.



이것이 정문인 듯 하다. 여행책자에 표시된 츄몬(중문)과는 좀 달라서, 그건 아닌 듯 하다. 


이제 다 빠져나와서 나라마치까지 내려가는 길. 카스가타이샤까지 쭉 들어오는 이 길이 오모테산도. 이 이름이 토쿄에도 있던데, 그 길도 메이지진구 앞에 있던 걸로 봐서는 신사나 신궁 같은 것들과 관련이 깊은 길 이름인 듯 하다. 의미는 여전히 불명.

이 오모테산도라고 불리는 길 양 옆에는 저런 석등이 엄청 많다. 아예 도배해놓은 듯. 누가 시주라도 하면 등 세워주나.. 

게다가 여기는 토리이마저도 특이한데, 저 사진은 채도를 낮춘게 아니라, 원래 저런 거다. 토리이는 신사의 상징 같은 거니까, 보통은 색도 다시 칠하고 하는데, 저것만은 유독 원래 색 그대로다. 



카스가타이샤까지 해서, 나라코엔은 다 보고, 이제 나라마치로 이동..

여기까지만 해도 꽤 길지만, 아직 나라는 끝나지 않았다.


아, 그리고 여기서 내려오다가 사슴에게 쫓기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1. 시카:사슴, 센베:과자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