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Note


'최선을 다하는 지리선생님' 모임으로 참가한 대구 답사의 다음 이야기.

실제로는 대구읍성 구역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근대문화거리로 이동했다.

너무나 더워서 그렇지, 그리 오래 걷지 않아도 대구의 핵심 포인트들을 다닐 수 있다는 게 대구 시내 답사의 포인트가 되겠다.



대프리카 조형물이 있던 현대백화점에서 달구벌대로를 건너면 금방 찾아갈 수 있는 관덕정 순교기념관.


관덕정 앞은 대구천이 흐르고 있었는데 달구벌대로가 만들어지면서 복개됐다고.

그래서 관덕정 자리는 대구천의 범람원으로 모래사장이 넓게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그런 하안의 넓은 땅들을 병영으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관덕정은 그 병영을 지켜보기 위한 망루였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훈련원공원도 비슷하게, 청계천의 범람원이 군사훈련지로 사용된 경우.

(알쓸신잡 출처로) 그 훈련원에 입소하는 장정들에게 군복을 만들어 판매했던 곳이 이현시장, 지금의 동대문시장이라는 얘기도 첨가.


병영이다보니, 사형을 집행한 장소이기도 했는데

그래서 흥선대원군 집권기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받고 순교를 하던 장소 중 하나가 이 관덕정이었다고.

관덕정 자체는 없어졌지만, 후에 천주교에서 부지를 매입하고 순교기념관을 세운 게 지금의 모습이다.



어차피 요즘 만든 것이긴 하지만,

관덕정 망루에 올라가면 단청에 알파(A)와 오메가(Ω), 그리고 십자가 진 예수를 그려두었다.




관덕정에서 다시 달구벌대로를 건너 남성로 쪽으로 가다보면, 영남대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남성로보다 바깥쪽에 있으니까, 대구읍성의 바깥쪽에 있었다는건데 그 폭이 사실 아주 좁다. 

동양의 도시계획의 바이블로 언급하는 주럐고공기에서 이야기하는 '대로'의 개념은 왕궁에서 남문으로 이어지는, 즉 왕이 이용하는 상당한 폭의 도로를 언급하기에

영남'대로'의 이 좁은 도로폭은 참으로 생소하다.

도시 내의 '대로' 개념과 국가 전체를 따졌을 때의 간선도로로서의 '대로' 개념이 다르며, 그저 간선도로이기에 '대로'라는 명칭을 붙인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도 이 영남대로라는 게 조선 조정에서 부설한 도로인지를 찾고 있었지만, 일단 네이버 검색 수준에서는 그렇다고 볼만한 이야기는 보이지 않았다.



곧 이어 찾아간 곳은 대구제일교회.

대구제일교회는 경북지방 최초의 개신교 교회이기에 유명하기도 하지만,



대구제일교회의 기둥 아래 주춧돌을 보면, 윗부분과는 모양이 확연히 다른 돌이 있다.

이 돌은 대구읍성이 친일파 박정양에 의해서 해체됐을 때, 그 대구읍성의 돌을 다시 깨서 없애버리려던 것을 대구 사람들이 슬쩍 빼돌려두었던 것을 

대구제일교회 기둥에 갖다꽂아버려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민족 의식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겠다.


여러 도시들이 그러하듯, 대구 역시 민족운동이 활발했던 도시였다.



약령시박물관을 보고 나와서, 대구제일교회 맞은 편에 있는 대구 교남 YMCA 건물.

그냥 누가 봐도 개화기 건물이라는 점 말고는 딱히 특징은 잘 모르겠다.



대구제일교회에서 YMCA를 스쳐서 조금 또 이동하면 계산성당을 볼 수 있다.

계산성당의 이름은 유명하긴 한데, 이름만.

박정희와 육영수가 결혼한 곳이라고 들었기는 한데, 그것보다는.



이 스테인드글라스가 더 눈에 띄었다.

한국인이네.


바르셀로나 사그라다파밀리아에서 김대건의 이름을 본 것만큼이나 반가웠다.

물론 한국이니까 뭐 이런 복장 정도 하나 넣어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찾아보기 힘들었으니까.



계산성당에서 3.1운동 계단과 청라언덕이 바로 보이지만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가이드가 이끄는대로 이상화, 서상돈 고택을 먼저 찾았다.



이 두 가옥은 진짜 옛날부터 있던 게 아니라 최근에 복원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런데도 이 가옥들이 최신식 아파트와 낡은 아파트 사이에 안겨있는 모양새라서 느낌이 많이 색다르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



3.1운동 때 추격을 피해서 올라갔다고 하여 3.1운동 계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계단을 올라가면 청라언덕으로 갈 수 있다.




청라언덕을 오르면 선교사주택 여러 채를 볼 수 있다.


성당 입지는 서울 명동성당처럼 언덕 위에 있는 경우나 도시 중심에 있는 경우가 흔한데,

계산성당은 둘 다 해당되지 않아서, 그 보상으로 선교사주택들을 청라언덕 위에 지었다는 해석이 있다.


그 밖에는,

에덴동산을 모방해서 청라언덕에 지었다는 설, 언덕 아래 지역이 과밀 상태여서 언덕 위에 선교사 주택을 지었다는 설 등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보통 성당은 신과 가까이 하기 위해 높게 짓는다는 사실과 관련해, 성당 대신 선교사 주택을 청라언덕 위에 지었다는 사실이 다른 것보다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긴 한다.


또 길어졌기에, 다른 분야의 이야기는 이어지는 다음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