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Note


4월 말의 어느 날씨 좋은 날,

전국 단위의 지리 교사 모임 중 하나인, 최.지.선 (최선을 다하는 지리 선생님 모임) 소속 선생님들과 강릉, 고성 일대를 답사하고 왔다.


타이틀 사진은 고성 송지호에서 왕곡마을 방향으로 찍은 사진.

유명한 석호인 송지호가 토사로 매립되는 과정을 포착하고 싶어 자신의 발을 송지호에 담그고야 만... 특히 최선을 다하는 어떤 선생님의 모습이다.




1. 강릉 | 풍호



강릉 모처에 보금자리를 둔 어떤 선생님(나)의 집에서 출발한 답사는 우선 사라진 석호인 풍호로 향했다. 

동해안에 10여 개에 달한 석호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정말 낯선 이름을 가진 풍호라는 석호를 찾아갔다.


풍호와 관련하여 남은 흔적은 '풍호마을'이라는 이 마을 이름만이 유일하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방황하다가 이 마을에서 오래 살았다는 한 아주머니를 만나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추가)

풍호마을은 실제 풍호와는 조금 동떨어진 곳에 있다.

아마도 풍호 주변은 마을을 이루기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여하튼 풍호마을은 진짜 풍호와는 조금 먼, 평지와 구릉이 만나는 그런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더 특이한 점은 풍호마을은 풍호와 다른 분수계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풍호마을은 풍호 주변에서 이주한 것인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라고 한다.


풍호마을은 연꽃축제가 열리는 것으로 유명하고, 2017년에 9번째 연꽃축제가 열린다.

풍호라는 호수가 있던 곳에 연꽃축제가 열리는 걸로 착각하기 딱 좋지만,

이 연꽃이 피어있는 곳은 그냥 논이지, 지형학적인 석호와는 전혀 무관하다.


다시 강조하자면, 연꽃축제가 열리는 곳은 풍호는 아니고 그냥 논이다. 

(풍호 아주머니에게서 확인한 내용)



진짜 남아있는 풍호는 딱 이것 뿐. 원래의 풍호는 대부분 이미 인공적으로 매립되었다.

'인공적'이라는 게 중요하다. 풍호 인근에 있는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나온 폐탄을 풍호 내부에 매립했었고, 훗날 석호를 복원하는 대신, 매립된 땅 위로 메이플비치CC라는 골프장을 건설하였다.

그러므로 이 사진의 오른쪽 부분은 골프장이다.




2. 강릉 | 금광평선상지



강릉을 비롯한 영동지방은 태백산맥과 가까이 있다는 점 때문에 선상지의 발달 가능성을 높게 볼 수 있지만, 실제 알려진 건 지금 이 곳, 금광평 선상지 정도이다.

사실 그마저도 너무 넓고, 선상지의 가장 높은 부분(선정)에서도 선상지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아 선상지를 공부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진 곳이다.




금광평 선상지는 지도 상에서의 그 느낌적인 느낌 느낌 말고는 촬영하기에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분명 체감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선상지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이런 용수로가 대표적인 예. 

보통의 지리 교과서가 가르치는 선상지에 대한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례 중에 하나이다. '선앙'은 논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가르치지만, 실제로는 이런 식으로 농사를 짓는 곳이 상당히 많다. 물론 자세히 보면, 논도 계단식으로 만들어져 있어, 경사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선상지들과 마찬가지로, 금광평 선상지 역시 '단구화'되어 있는 모습을 눈으로 관찰할 수 있다.

큰 나무 뒤에 하천이 있는데, 선상지의 고도보다 낮게 위치하고 있어,

선상지를 퇴적시킨 하천이 나중에는 밑으로 밑으로 침식을 진행하여, 지금은 하천이 절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변하게 됐다는 것.




더불어 선상지가 퇴적지형이라는 중요한 증거가 되는 둥근 자갈(원력)도 만날 수 있었다.




3. 강릉 | 테라로사 커피 공장



금광평 선상지까지 온 김에, 구정면에 있는 아주 아주 유명한 카페, 테라로사 커피 공장에 방문하였다.

이 곳은 오전 9시에 오픈했고, 우리가 10시 반 정도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있었다. (예상보단 적었다.)


아침을 안 먹은 우리는 이 곳에서 브런치를 먹고 고성으로 출발.



동해고속도로(65)의 양양-속초 간 구간이 새로 개통하여 이용하였고, 같은 차에 탑승했던 한 모 선생님의 강한 요구로 울산바위를 멀리서나마 보고 이동하였다. 


이 바위가 왜 울산바위냐는 물음에 울산에 있는 어떤 바위가 금강산 가는 길에 눌러앉았다는 말을 해줬더니 90년생 함 모 선생님이 대체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었냐는 거다.

... 은비까비를 모르는 나이인가보다.




4. 고성 | 운봉산



지리 또는 지질 관련 전공자들에게도 알려진지 그다지 오래 되지 않은 운봉산이다.

나의 경우에는 대학 교수님인 권동희 교수님이 자신의 블로그에서 소개한 것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영동지방에 있을 것이라 생각조차 못했던 현무암을, 그리고 그 현무암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암괴류를 관찰할 수 있는, 그런 엄청난 곳이다.



대개 지리를 조금 공부했다 치면 영동지방은 대보화강암 지대로 알고 있고, 대부분 그것과 맞거나 비슷하다.

운봉산 아래는 풍화가 아주 심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바닥이 화강암으로부터 나온 알갱이들(셰프롤라이트) 때문에 미끌미끌하다.

곳곳에 나타나는 벽면은 풍화가 아주 심해 손으로 조금만 뜯어도 쉽게 뜯어져 나간다.




그렇게 풍화된 화강암을 지나치자마자 현무암 돌덩이가 이렇게 굴러떨어진 암괴류를 만나게 된다. 

이것이 암괴류인지 애추(talus)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증거들을 동원해야 하는데, 

지오파크에서 세운 표지판에서조차 이 둘을 혼용하고 있다.


암괴류(block stream)라고 하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바위들이 지면에서 분리되고 아래로 조금씩 이동했다는 것이고,

애추(talus, 테일러스)라고 하면 태초에(?) 절벽이 있었는데 해빙기에 바위들이 절벽에서 툭툭 떨어져서 지금 모양처럼 굴러떨어졌다는 뜻이다.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데, 확실하게 어느 한 쪽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5. 고성 | 왕곡마을 



운봉산을 떠나 고성 거진항까지 이동하여 물회를 먹고 왕곡마을로 왔다.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주 양동마을 같이 대단히 유명한 마을은 아니지만 영동 지방에서 전통 가옥으로 알려진 유일한 마을일 수 있다.



고성까지 오는 사람도 많지 않지만, (보통 속초를 가지...)

왕곡마을 자체도 그렇게 유명한 곳은 아니라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다.


왕곡마을의 뒷 산 역시 앞서 봤던 운봉산처럼 뾰족한데, 지질도로 확인해보니 역시 현무암 산지였다.

고성 일대에서는 화산 활동이 조금 있었는데 비슷한 형태의 작은 화산 정도로 남은 것 같다.



현무암의 흔적은 담벼락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왕곡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돌을 주워다가 담을 만드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주변 암석의 성질을 반영한 담벼락이 흔하다.



전통마을을 방문하게 되면, 답사의 중점 사항은 가옥의 형태나 배치에 중점을 맞추게 된다.

이번 왕곡마을 답사에서 아쉬운 점은 둘 다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 정도.


특히 왕곡마을이 처음 알려질 때는 남한에서 보기 드문 '겹집'을 볼 수 있어 의미가 있던 곳이었다.

겹집이라고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한옥과 달리 방의 한 쪽이 막히고 다른 방과 벽으로 마주하고 있는, 쉽게 밭 전(田)자 가옥 형태를 말한다.




6. 고성 | 송지호



동해안의 대표적인 석호로 알려진 송지호는 왕곡마을과 가까이에 있다.

가까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왕곡마을의 생활권 안에 송지호가 있는 정도.


석호 답사는 보통 바다 쪽으로 가서 호수와 바다의 경계를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에는 수능 기출문제를 바탕으로 호수의 안쪽을 답사해보았다.

그러니까 석호가 하천에 의해 매립되어가는 과정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사진에서의 농경지는 그러니까 석호가 매립되어 가면서 추가되는 논이라고 보아도 괜찮을 것 같다.




한국지리 가르칠 때 대부분 묻는 질문일 수 있는데, 

석호의 물은 바닷물일까, 민물일까?

.

.

정답은 섞였다.


민물에 가깝지만 그래도 염분이 있어서, 석호를 '기수역'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그냥 섞였다는 의미.

섞였지만 담수에 비해 염분이 높기 때문에 보통 벼농사에 그대로 활용할 수 없고 차라리 송지호로 유입하는 하천의 물을 그대로 받아 논에 공급한다고 한다.



우리도 석호를 뒤에서 보는 일은 흔치 않아서 그런지 곳곳을 다니며 열심히 답사했다.

타이틀 사진에서처럼 누군가는 석호에 발을 내주기도 했고... ㅋ



7. 양양 | 인구리 죽도



송지호에서 양양의 인구 해변까지는 약 1시간 거리로, 운전자에 따라 시간 차이가 발생하여 대기하면서 찍은 사진.

7번 국도를 벗어나 인구 해변까지 접근하면서 서핑, 다이빙과 같은 해양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업체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음을 알 수 있었다.

최근, 2-3년 정도 사이에 우리나라의 서핑 명소로 양양이 떠올랐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그게 인구와 죽도 해변인지는 모르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사진 역시, '인구다이빙'이라는 이름을 통해 해양 액티비티로 떠오른 이 지역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졌다.



죽도는 원래 이런 구멍이 숭숭 뚫린 미지형인 타포니tafoni로 알려진 곳이다.

나는 이번 방문으로 세 번째. 2008년 첫 방문 이래 가끔식 오다보니 이 작은 지형이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2008년과 2011년의 방문에서 진짜 이런 게 있었나 싶었던 구멍 하나가 발견되었다.

과거 사진을 보면 오목한 그릇처럼 생긴 나마gnamma 라는 지형이 존재했던 건 알고 있었고, 위치도 그 곳이긴 한데, 이렇게 뚫려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처음 알았다.

이렇게 구멍이 뚫려있는 지형들은 사람들의 좋은 놀잇감이기도 하다.



죽도 타포니의 대표 사진이라면 이 것.

과거 사진과 비교하면 조금씩 닳아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닳아간다는 말은 조금 전문적으로 이야기하면 풍화되고 있다는 것.



2015년(?)에 죽도 꼭대기에 죽도전망대가 만들어졌다고 되어 있는데, 몰랐던 곳이기에 올라가보았다.

바닷가부터는 정말 수많은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이 사진은 죽도 해변을 찍은 사진으로, 바다에 떠있는 작은 점들은 서핑인지 다이빙인지를 배우는 사람들일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가 해양 액티비티의 명소라니까?



죽도 해변과는 다른 모습의 이 쪽은 인구 해변. 두 해변은 이렇게 죽도를 사이에 두고 나누어져 있다.

지도를 통해 확인해보면 죽도는 원래 분리된 섬이었고, 죽도와 육지 사이 그리고 죽도의 남북 방향으로 모래가 잔뜩 쌓이면서 모두가 한덩어리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8. 양양 | 포매호



이번 답사의 또 다른 작은 석호, 포매호로 향했다.

영동지방의 지형 답사에서는 석호를 참 지겹게 볼 수 있다.


이번 석호는 규모는 참 작았는데, 송지호에서처럼 석호 안쪽에서만 봐서는 딱히 느껴지는 점은 많지 않았다.

다만 포매호 역시 공중에서 보면 유입 하천을 따라 석호가 매립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9. 강릉 | 안목 해변


(이 부분은 직접 찍은 사진이 없음)


강릉에 와서 살다보니 쉽게 갈 수 있지만 의외로 별로 가지 않은, 안목 카페거리이다.

강릉이 커피로 유명해지면서 시가지와 가깝고 개발이 가능한 해변(경포, 강문, 안목)을 따라 음식점을 비롯해 카페가 우후죽순 들어서 있다.

그 중에서도 순수하게 카페의 밀집도가 높은 곳이 안목 카페거리.



안목 카페거리 어딘가에 있는 숙소에서 1박을 하고,

다음 날 아침 초당순두부집에서 짬뽕순두부로 아침을 먹고, 다음 일정으로 이동하였다.




10. 강릉 | 안반데기



고위평탄면으로 유명한, 그러나 알려진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안반데기를 찾아갔다.

특이한 점은 굉장히 높은 곳에 있지만 행정구역 상 평창이 아닌 강릉.


안반데기로 올라가는 길에 풍력발전기의 날개를 발견했다. 역시나 안반데기 위에서는 풍력발전기를 새로 설치하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안반데기의 멍에전망대.


고위평탄면이라는 지형학 용어 때문에 이것이 과연 '평탄'한가의 의문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주변보다는 경사가 적기 때문에 평탄하다고 부르는 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부분.

그래도 가파른 언덕 수준이기에 이걸 직접 걸어다니자면 굉장히 힘이 든다.

상당히 가파른 언덕이라 SUV가 아니면 다니기 힘들 것 같았지만, 사실 아반떼도 올 수 있다. 경차를 탔어도 힘들지만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별다른 기상 특이점이 없는 날이지만 바람이 센 곳이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풍력발전기가 여러 대 세워져 있다.

이 때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나중에 대관령 양떼목장에 가보니 이 풍력발전기 일부가 보인다.


풍력발전기들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볼 때,

바람이 주로 어느 방향으로 부는지 가늠할 수도 있다.



바람이 특정 방향으로 강하게, 많이 분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편향수 (한 쪽으로 치우친 나무).

바람을 자꾸 맞다보면, 나무는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만 성장하는데, 그 방향과 풍력발전기의 방향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행한 최.지.선의 윤창호 선생님의 발견.



멍에 전망대를 벗어나 반대편에 보이던 풍력발전기에서 바라본 풍경.

여전히 주변 산지에 비해서는 경사가 조금 완만한 모습이다.



무수히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본 답사는 안반데기의 중앙에 있는 화전민전시관에서 종례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