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Note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 동계 학술대회의 답사 프로그램으로 남해를 오랜만에 방문하였다. 

실제로는 답사 신청자가 우리 그룹의 지리 선생님 4명 뿐이라서, 우리 그룹 4명과 이화여대의 대학원생 선생님 3명 만의 자체적인 답사가 이루어졌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꽤 자주 온 걸로 기억을 했는데, 사진을 뒤져보니 2005년 1월에 한 번, 2007년 8월에 두 번, 총 세 번 온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2016년 12월에 왔으니까 거의 10년 만에 다시 남해에 찾아온 셈.



학회 학술대회가 있었던 진주교육대학교에서 남해로 가면 사천 선상지, 창선-삼천포대교를 지나게 되는데 이번 답사에서는 지나가면서 보는 걸로 정리했다.


경남 남해군에 들어가게 되면 본토라고 할 수 있는 남해도 이외에도 창선도가 있고, 둘 사이는 지족해협이라는 아주 폭이 좁은 해협이 있다. 사진만 보면 한강의 느낌이 난다.

사진에서는 왼쪽이 창선도, 오른쪽이 남해도. 폭이 좁은 해협이라면 물살이 빠를 것 같지만, 사실 그렇게 빠르지는 않다. 



죽방렴은 이렇게 생긴 도구를 이용한 어획 방법이다.

사진 상의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물이 흘러가면 멸치를 비롯한 각종 생선들이 저 둥근 통 안으로 들어가 걸리게끔 하는 방식.

대신 한 번 안에 들어간 물고기는 쉽게 빠져나올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죽'이 들어가서 대나무와 관련될 것 같지만, 실제 죽방렴의 기둥은 참나무.

대나무는 지금 현재 그물로 대체된 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지족해협의 중간 어디에는 이런 모래섬이 있었고, 이 모래섬을 이용한 죽방렴도 설치되어 있다.

이 모래섬은 원래 이것보다는 규모가 더 컸지만, 2002년 태풍 매미가 왔을 때 잠기고 침식되어 아름다운 형태를 많이 잃었다.

게다가 죽방렴을 관찰하기 위한 다리와 데크를 설치하고, 모래섬 안의 소유자가 카페를 운영하면서 자연스러운 경관과는 거리가 많이 멀어졌다.



무엇을 잡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뭔가 계속 채취하고 계신다.




죽방렴을 이용해서 잡는 것들 중에 대표적인 어종은 멸치.

따라서 지족해협 일대에서는 멸치와 관련된 음식을 파는 곳이 많으며, 대표적인 음식이 멸치구이, 멸치회무침, 멸치쌈밥과 같은 것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멸치와 비교하면 굉장히 큰 멸치들을 이용해서 회무침과 쌈밥을 만든다.


멸치쌈밥의 멸치에서는 뼈가 가끔 씹히기는 하지만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레 먹을 수 있다.

멸치회무침의 멸치에서는 그 뼈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


블로그 검색을 통해 맛집이라고 해서 찾아갔던 식당인데, 비리지도 않고 잘한다는 것은 인정.

멸치쌈밥이 그렇게 대단히 맛있는 음식인가에 대해서는 글쎄다...라는 느낌. 아무래도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않은 음식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나 싶다.



2005년의 기억과 완전 다른 곳을 찾으라고 한다면, 아마 독일마을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남해의 주요 관광지로 알려지면서 방문객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그 관광객을 위한 펜션, 음식점 등도 확실하게 증가하였다. 

사진에서처럼 기념품, 맥주 판매점 같은 곳은 과거에 비하면 낯선 장면일 듯하다.


사진 속에 있는 바이로이트Bayreuth를 비롯해서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함부르크Hamburg와 같은 도시명을 사용한 상점이나 펜션이 많다.

그게 아니라면 괴테, 베토벤과 같은 유명인의 이름.

독일어 지명, 인명을 써서 있어보이면서도 그나마 친숙한 이름들을 많이 사용하였다.



1960년대 독일에 파견된 광부, 간호사가 한국에 돌아와 정착할 공간을 마련해줄 목적과 함께 관광지로 개발하고자 독일풍으로 조성된 마을.

관광지가 되어버렸다는 점 때문에 실제 광부, 간호사가 그렇게 많이 거주하는 건 아니라는 말도 들었지만, 이건 건너들은 것이라 정확하지 않음.


독일마을 내 많은 건물들이 독일 스타일을 반영하여 하얀색 벽, 갈색의 지붕으로 통일되어 있다. 
그런데 막상 독일에 가면, 이런 건물만 있는 건 아니고 굉장히 다양한데, 독일마을의 주택들은 지나치게 통일된 감이 있다.
사실, 이렇게 산자락에 마을을 두고 있는 것부터 독일 스타일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보인다.



1960년대 독일에 파견됐던 광부, 간호사와 관련된 내용을 전시한 공간.

1,000원의 입장료가 있어 굳이 보고 오지는 않았다.


조형물은 지하 갱도에서 석탄을 퍼올리는데 사용한 수갱 Schacht/shaft이라고 하는 것을 본딴 것으로, 독일 광산의 상징과도 같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졸버라인Zollverein 광산에는 이것과 유사하지만 훨씬 더 큰 '샤프트 12(Schacht XII)'가 있다.



독일마을에서 내려다 본 물건리 방조어부림.

위치한 곳의 지명이 '물건리'이고, 방조어부림의 명칭 중 '방조'는 조류 또는 바닷물을 막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구체적으로는 아래와 같은 기능을 한다.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1. 방풍림 :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역할

2. 방조림 : 파도에 의한 해일, 염해, 조수를 막아주는 역할

3. 어부림 : 숲의 초록빛이 바다의 물고기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사진에서처럼 바다-숲-마을의 구조를 이루고 있어, 방풍, 방조의 기능을 위해 의도적으로 심은 숲이라는 사실이 명확하게 나타난다.

또한 작은 만에 해변이 만들어지고 그 뒤에 마을이 형성된다는 법칙을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10년 전과는 정말 많이 달라졌다, 라는 느낌을 받은 건 여기.

'가천 다랭이마을'이라고도 많이 부르는데, 가천은 마을 이름이고, 계단식 논을 상징하는 건 다랑이의 사투리 '다랭이'.

그래서 그런가 마을 내의 표지석에는 '다랑이 논'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다랑이 논'으로 알려진 것이 무색하게 요즘에는 밭이 더 많다더라, 하는 말도 있다.

사실 논농사에 필요한 물을 끌어오기 적합한 구조로 보이지는 않아서 밭으로 전환되는 게 어쩌면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우리나라 전체적으로는 이제 쌀이 남기도 하고.




위는 2016년 12월 사진, 아래는 2005년 1월 사진으로, 그러니까 약 12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있다.

찍은 위치가 똑같지 않고, 촬영한 카메라도 다르기에 공간감은 좀 다르다.


가장 큰 차이라면 다랭이마을이 관광지로 발달하면서 마을이 위아래로 확장했다는 점이 보인다. 대신에 경지 면적은 감소했을 것이고.

내부적으로는 2005년에는 민박집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현재는 민박집, 식당 뿐만 아니라 카페까지 생겨났다는 점.



우리나라 대부분의 농촌이 고령화되고 마을은 쇠퇴하는 추세와는 다르게, 외지인과 자본의 유입이 활발하다.




가천 암수바위이고, 미륵바위라고도 한다. 이렇게 눈에 띄게 서있는 모습의 바위가 숫미륵, 이 옆에 비슷한 모양으로 기대고 있는 모양의 바위가 암미륵이라고.


토속신앙이나 상징적인 면 이외에, 지형학 관련해서는 암석의 화학적 풍화로 인해 표면이 둥글둥글한 핵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동백나무 아래에 있는 바위는 그마저도 반으로도 쪼개져서 화학적 풍화작용 이외의 다른 이유, 특히 물리적 압력에 의해 발생하는 기계적 풍화작용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저렇게 남성 또는 여성의 성기를 닮은 바위를 만지면 자녀를 낳게 한다는 것과 관련한 토속신앙이 있는데, ...... 

슬프게 답사를 마무리하고 진주로 복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