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Note



6. 양림동 펭귄마을


점심식사 후 광주의 핫플레이스, 양림동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오후 1~2시 정도의 광주는 또 다른 의미의 핫플레이스. 34~35도 정도의 더운 날씨라 돌아다니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육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 최지선 멤버들을 데리고 다니는 설계자 서태동 쌤의 짠내투어가 진행되고 있었다.



여러 펭귄으로 장식한 이 마을의 이름은 '펭귄마을'

펭귄의 이름은 이 동네의 어르신이 걸어다니는 모습이 펭귄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

펭귄마을이라는 이름이 붙고, 양림동보다 작은 단위의 마을 공동체가 생긴 것 같다.


마을의 입구에는 펭귄마을의 유래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는데, 이 곳 역시 '마을만들기' 활동을 하는 주역이 한 명이 존재한다.




펭귄마을은 겉에서 보면 예쁜 도색, 펭귄들이 특징적이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오면 고물상 들어온 것처럼 오래되고 낡은 물건들이 가득하다는 특징이 있다.

펭귄마을을 조성하면서 오래되고 낡은 것들을 모아서 아무렇게나 전시하면서, 나름 하나의 시그니처로 자리잡은 것 같다.


1980년대에 태어난 나에게도 추억이라고 하기엔 모르는 것도 꽤 있어서 좀 애매하지만, 아무튼 '추억'의 군것질거리를 파는 것도 펭귄마을의 내부 이미지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양림동 펭귄마을도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펭귄마을 뿐만 아니라 양림동 전체가 핫플이 되면서 임대료가 적지 않게 상승한 듯.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면 새로운 간판을 내건 카페, 식당, 공방 같은 것들이 만들어져서 경관 상의 큰 변화가 발생하는데, 펭귄마을 내부에서는 그런 경관의 변화는 보이지 않았고, 임대료 상승에 저항하는 피켓들이 곳곳에 있었다.


젠트리피케이션 중에서도 관광객 유입으로 주거지역에 관광객을 상대하는 음식점, 카페가 늘어나고 결국 주거지역이 축소되어 주민들이 떠나는 현상은 특별히 tourist+gentrification의 조합으로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fic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은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상당 부분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지리과 1정 연수에서도 언급됐던 내용인데, 젠트리피케이션의 개념을 사회적으로는 너무 단순화해서 이용한다는 설명도 이 부분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임대료가 상승하여 기존 세입자가 내몰리는 현상'으로만 정의내리는 부분을 문제삼는 것.

쫓겨나는 세입자의 관점을 넘어서, 낙후된 지역에 자본이 투입되고 경관의 변화가 나타나는 부분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입자의 관점이 아닌 외부자의 관점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이 긍정적인 면을 가질 수 있다. 물론 이 말이 세입자가 쫓겨나는 현상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펭귄마을 입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어떤 건물의 벽.

그 벽에는 양림동 근대문화역사마을의 약도가 이렇게 예쁘게 그려져 있다.

더운 날이라 그런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너무나 멀어보였다.

양림동은 작은 동네라고 생각했는데, 대구읍성 답사에서처럼 반나절을 투입하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인가 했는데......


미리 말하는 결론 : 양림동 한바퀴도 힘들다.




일단 펭귄마을을 보고 나온 시각이 2시 정도였는데

날씨가 너무 뜨거워 성난 민심을 달래고자 짠내투어의 설계자 서태동 선생님은 우리에게 커피와 냉기를 투입하기로 결정하였다.


아참. 그게 이 집은 아니었다.

우리가 갔던 건, 양림148이라는 카페. 뜨는 지역에서 볼 수 있는 현대적인 카페의 전형적인 모습. 나중에 정겨운 선생님이 자신이 잘 가는 카페라며 아쉬워했는데, 우린 그저 그 분을 또 못 봐서 아쉬웠다.



한희원 미술관의 입구.

처음에 들었을 때는 '한의원'으로 들어서, 여긴 뭔데 한의원도 유명한가 하는 생각들을 나 뿐만 아니라 여러 명이 했던 것 같은데... 

한'희'원이라는 사람 이름이었다.


예술작품이 많이 있었고 촬영도 가능했던 것 같은데, 작품은 잘 안 찍는 편이라...

그래도 딱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아마 사람에 대한 이해가 좀 더 있었으면 깊이 있는 해석이 가능했을 듯.




바로 이동한 곳은 이장우 가옥.


특징적인 게 몇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담벼락 앞에 돌을 큰 걸 하나 박아놓고, 올라가서 사진 찍을 수 있게 해두었다는 점.

그리고 또 하나는 들어가는 입구가 대문 옆에 쉽게 눈에 띄지 않게 작은 쪽문이라는 점이 되겠다. 대문이 세 개 있는 집에서 가운데를 막아두는 경우는 흔한데, 대문 하나인데 쪽문으로 출입하는 경우가 그리 흔했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입장했다.


그리고 했던 얘기 중에 기억에 남는 거는 속이 썩어문드러진 감나무 얘기 정도...

나머지는 ... 집이 크다... 잘 살았나보다... 하는 생각들 뿐.

사실 집 규모가 상당하고 구조가 복잡해서, 이 정도 면적에 집을 건축하고 유지할 정도면, 상당한 부를 가지고 있었겠다는 생각은 가능할 듯.




양림동 일대에 주택이 들어선 꽤 오래 전인 1900년대인데, 잘 정비된 가로망을 갖추고 있다.

완전 자연발생적인 가로망은 아니고 어느 정도 정리된 가로망인데, '근대문화역사마을'을 조성하면서 도로 폭을 확장하고 보도블럭도 새로 깔아둔 것 같다.


바닥에 보도블럭을 깔아두는 건 

역사가 오래된 도시라는 느낌을 줄 수는 있는데 사실 통행에는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니다.

유럽 도시에서 캐리어 좀 끌어봤다면 블럭 바닥이 얼마나 불편한 지 체감했을 듯.

당연히 양림동이 그 당시에 보도블럭이 깔려있던 곳이라고 보기도 힘든데, 그냥 역사가 좀 된 동네라는 장소마케팅 차원이었을 듯.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명작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최후의 만찬 ver.양림>

양림동 선교마을(?!)을 만드는 데 기여한 주요 선교사들의 얼굴을 <최후의 만찬> 주인공들에 대입하였다.

예수의 얼굴도 바뀐 것 같은데, 그게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다. 오웬 아니면 유진벨이나 되지 않을까.




요즘 내 인스타그램에 좋아요 눌러주고, 가끔 팔로우해주던 육각커피가 이거였구나...... ㅋㅋ

여기 원래 있던 건 '다형다방'이었다고 한다.



이 더운 날에 굳이 사직공원에 있는 전망대까지 올라간다고 하여 투 썸즈 다운을 받으면서도 강행하는 짠내투어 설계자 서 박사님을 따라 가는 길.

이 일대가 선교마을/선교타운/선교 뭐 아무튼 그런 곳이란 걸 보여주는 상징물 또 하나.

선교기념비가 되겠다.



유진벨 선교기념관에서 아래로 내린 손가락을 잠시 거둬들이고 (시원했으니까)

양림동의 선교 역사에 대해 잠시 탐구하였다.

그 당시 전파된 기독교 종파가 뭐더라... 암튼 특이하게, 미국에서 종파의 근거지와 지리적 환경이 같아서 목포, 광주를 찾았다는 설명.

그와 함께, 당시 목포는 지역 토착 세력이 강했기 때문에 선교가 어려웠고,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한 광주는 선교하기에 쉬워, 목포보다는 광주를 거점으로 잡고 선교했다는 설명도 추가.


열심히 설명해주시는 서 박사님과 그 뒤에서 취식하고 계시는 김 선생님. (그리고 어린 공범이 한 명 ㅋㅋ)




사직공원 자체는 그리 멀고 높은 데 있는게 아니라서 금방 갈 수 있다.

사직단이란 건 한 해 농사, 그러니까 경제적 풍요를 기원하는 제단이 되는데 전국 곳곳에 있다. 서울에도 있고, 부산은 심지어 거기다 야구장도 만들었고.

당연히 구 도심과 멀리 있지 않은데, 광주의 사직단, 사직공원 역시 시내에 가까이 있어서 올라가면 광주 시내를 잘 볼 수 있다.


이렇게 보이는 곳들이 전통적으로 '광주'라고 불리던 곳들의 범위. 

주로 충장로, 금남로 위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보이는 저 큰 산이 광주의 상징, 무등산.

때마침 전망대에 있는 망원경으로 보니 입석대, 서석대가 다 보이길래 "무등산 힘들게 올라갈 필요 없겠네" 로 결론이 내려졌다.

더위 먹더니 의욕도 떨어져간다. ㅋㅋㅋ


다만 아무도 망원렌즈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주상절리들을 찍은 사람은 없다.


사직공원 전망대에서 상무지구가 보인다면 이야깃거리가 더 많았겠지만, 바로 옆에 지어진 아파트단지 때문에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건 좀 아쉬운 점.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야구장), 기아자동차 공장 (구 아시아자동차 공장), 유스퀘어 (광천터미널) 모두 보이지 않았다는 것도 아쉬움.




사직공원에서 내려와 바로 숙소로 복귀하는 걸 기대했지만, 아직 더 볼 것이 있다며 이동하였다. Two thumbs down.

사직공원에서 내려오면 바로 호남신학대학교가 있고, 그 안에 '다형 김현승 시비'가 있다. 

아까 '다형다방'에서의 그 '다형'이 맞다. 

원래는 광주천이 내려보이는 아주 아름다운 위치에 있던 시비이지만, 대학교 기숙사가 이 정면에 위치하면서 뷰를 베렸다.




우일선 선교사사택인데, 

우일선은 윌슨의 가차. 회색으로 만들어 독특하고 예쁜 집인데, 드라마 등의 촬영지로도 인기라고 한다.

더불어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가옥이라는 설명도 추가.


이 아래에 호랑가시나무라는 독특한 나무가 있는데, 갈색의 안내 간판까지 있다.

만지면 뾰족해진다는데, 파리지옥풀처럼 바로 반응할 거라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동백과 같은 전형적인 조엽수라는 사실도 확인.




호랑가시나무를 보고 호남신학대학교에서 한참 내려오면 광주양림교회 한 쪽에 버려진 것처럼 있는 오웬기념각.

역시 전형적인 서양식 건축.


이후에 숙소로 이동하고, 저녁식사까지.